잉크잼에서 이번에 새로 출판된 『프레임 & 잉크』.
평소 내러티브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에, 오랜만에 집어든 테크니컬 책입니다.
책 대부분은 텍스트보다 고퀄리티 예시 아트워크로 꽉 차 있습니다. 이게 엄청난 장점이더군요. 단순히 휘리릭 그은 듯한 펜터치에서도 작가의 깊은 관록이 느껴졌습니다. 예상했던 내용이 많았지만, 필력과 그림에 감탄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원판은 2010년에 출간된 책으로,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한 연출 교재더라고요. (저는 이제야 알았지만…)
특히 다양한 예시 그림과 섬네일 스케치를 통해 연출의 차이가 직관적으로 와닿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된 타겟은 영상·만화(그래픽 노블)·애니메이션 분야지만, 저는 일러스트레이션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국 강조점은 달라도, 시각적 유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항상 비슷한 요소가 반복됩니다.
라인의 흐름, 조명, 밀도의 강약,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궁금증과 스토리. 이 책은 이런 요소들을 다양한 기법과 예시로 풀어 보여줍니다.
후반부 컷 연출 파트는 정말 만화를 읽는 듯한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그래픽노블 중에서는 페이블즈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장르의 정수를 이렇게 도식화된 형태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참 행복했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 자신이 오로지 '캐릭터를 돋보이기 위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데에 능력치가 집중되어있어 사실 그 안에 어떠한 스토리를 담는 연출에는 굉장히 약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연출을 공부하는것 또한 꽤나 도움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저는 그냥 예전부터, 예쁘고 탐미적인 걸 그리는걸 좋아해서(그래서 못생긴걸 정말정말 못그려요...) 저학년 시절 예쁜 소녀를 하나 그렸는데, 엄마가 그걸 가만히 보시더니 얘는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고, 어디를 가고 있는거니? 이런 식으로 그림 속에 스토리를 담아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저는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게 굳이 필요한가...? 알쏭달쏭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잘 전달된 내러티브는 어떤 테크닉보다 강력하게 보는 이의 관심을 끌어당긴다는 것을요.
프레임&잉크는 그 내러티브를 '어떻게' 전달할 지에 대한 테크닉들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만화, 노블연출에서뿐만이 아니라 한 장의 일러스트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인 구성 이외에도 스토리텔링적인 은유 표현의 예시를 조금 더 많이 볼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전달하는 방법 뿐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할지 그 자체를 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함께 있었으면 했는데 그보단 전달하는 테크닉에 집중되어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네요.
사실 이걸 기대하는건 꼼수를 바라는것과 마찬가지겠죠. 이건 좋은 영화, 만화, 컨텐츠들을 보면서 충분히 느껴볼 수 있으니까요.
구성과 연출, 아직은 저도 많이 어려워하는 분야이지만 훌륭한 작가의 예시 아트웍 덕분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디자인-일러스트-만화 사이에 전부 통하는 든든한 기법들만 다루어져있어서, 전공과 상관없이 그림을 공부하시는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읽어도 좋을법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